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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에 관하여

알람에 관하여.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매일 하루를 마친 저녁 시간이면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만다.고 고백한다.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나는 역시 "올빼미형 인간이야"라며 오늘 못다한 하루를
더 열심히 마무리 지어보자는 이상한 의무감에 밤 12시를 넘기는 것은 예사다.
나는 하루의 마무리를 굳이 12시를 넘겨가며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라는 괴상한 만족감을 갖는 타입의 인간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상하게도 학창 시절에는 일이 많지 않은 이상 '굳이' 조금만 더 자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시험 전날은 일찍 자야 시험을 잘친다는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기까지 했었다. 그저 할 일이 많아서 12시가 넘어가는 일은 많았지만 말이다.

12시가 넘어가면 인체의 신비로운 프로세스가 고개를 든다.
1) 12시가 넘으면 배가 급격히 고파진다.
2) 라면을 끓여 먹는다.
3) 라면을 끓여먹으면 배가 부르다.
4) 배가 부르면 졸리다.
5) 그러면 라면을 끓여먹은 것을 후회한다.
정도의 자연 현상의 순서가 매일 같이 반복된다. 상당히 단순하지만 저항할 수 없다.

어쩌다가 이런 늦은 하루의 마무리를 하게 되었는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나름 근면 성실한 -이라고 스스로 얘기하니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왜, 언제부터 이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2시를 한참 넘기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다음날 아침이 살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두려워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의 마무리를 잘 하고 행복감에 젖어 잠들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당연히 중요한 일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
잠들 때 만큼은 늦은 하루의 마무리가 다시 후회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덕분에 늦게 자더라도 일찍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나름 연구하고,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았다.라고 해보니 실제로는 일찍 자는 것이 방법이지만, 난 아직도 밤에 뭔가를 하는 것이 즐거운 나이트라이프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런 나의 나이트라이프를 사수하기 위한 허무한 노력들은 남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모두들 그러듯이 시끄러운 자명종을 사서, 머리 맡에 두고 잤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분명 자명종을 기상시간에 맞춰놓았지만, 헛, 지금이 몇시지 하고 일어나 보면 어김없이 자명종의 스위치는 꺼져 있다. 그래서 자명종을 머리 맡에 두지 않고, 장롱 같이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 맞춰놓고 자보기도 있지만, 여전히 자명종은 내 머리 맡에 스위치가 꺼진 채 째깍째깍 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긴 한데, 좀비처럼 혼자 일어나서 나 모르게 꺼버리는 자명종은 더 이상 믿을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래서 또 시도한 것은 알람 어플이었다. 앱스토어에서 찾아보니, 알람을 끄는 방법이 어려운 어플들이 즐비했다. 어떤 알람어플은 알람이 울리면 산수 문제를 풀어야 알람이 꺼지는 것이 있었고, 어떤 알람은 특정 사진을 찍어야 알람이 멈춘다거나 - 아직 잠이 꺠지 않은 얼굴을 찍는 것은 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이게 누구신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진첩에 도배된다. 그것첨 곤란한 일이다-, 또 어떤 알람은 닭이 알을 낳으면 알을 모두 주워서 넣어야 알람이 꺼진다. 모두 널 괴롭혀 줄테니까, 내일 아침에는 준비하길 바래 라는 듯이 어플 아이콘들이 웃고 있다.

'좋았어'라며 산수를 푸는 알람을 시도했지만, 산수를 못하는 관계로 아침에 3번을 틀리고 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아침 기상을 위해 3만원짜리 공학용 계산기를 사야 하는가 하는 어이없는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시도한 것은 이미 말했지만, 내 얼굴을 찍어야 하는 알람이었는데, 그것이야 말로 가관이다. 처음에는 '음. 음. 이거야 말로 잠을 확깨게 만들어 줄 수 있겠군' 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어나자 마자 내 얼굴을 찍는 것은 보통 간이 큰 사람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세요?' 라는 질문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의 얼굴 떄문에, 기분 좋아야 하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아침이 훨씬 많았다. 거짓말 같다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얼굴 사진을 찍어보세요. 최근에 어떤 여자분의 트위터에 올렸던 화제의 트위팅이 있었는데, 그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제가 못생긴 남자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걔들도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흠. 나도 내 얼굴이 그랬다구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잠에서 꺠어나긴 했지만 그런 미션들을 수행하면서 내가 원래 예정했던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 그러니까 얼마 전 - 잠을 자다가 엄청나게 놀라 자빠지면서 이불킥을 하면서 정신이 확 들었었던 적이 있다. 꿈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내가 잠을 자고 있는데 내 페이스북 담벼락에 계속 '나는 늦잠을 자고 있다.' '나는 늦잠을 자고 있다.' '나는 늦잠을 자고 있다.' '일어나라고 이자식아' 라면서 실시간 도배가 되는 일이 있었다.
정말 이불킥을 안하고는 베길 수가 없던 순간이었다. 허억하고 벌떡 일어난 나는 땀이 흥건히 젖어 있었고, 내가 원래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딱 맞춰서 일어 났다. 벼랑 끝으로 몰려서 떨어지다가 잠에서 깬 적은 있었지만, 이런 황당한 사건으로 잠에서 깬 것은 처음이다. 처음이다. 처음이다. 처음이다. 라고 하니, 정말 정신이 번쩍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료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별거 아닌 것 처럼 얘기하는 것은 정해진 코스다.
'그래서 나는 잠에서 홀랑 깼어'
'음 그래?'
'정말 뒷목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니까'
'그렇군'
이라는 담백한 반응이 있었지만, 동료는 이런 말을 나에게 남겼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헤맸지만, 사실 잘 모르겠거든. 그런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찾아낸 것 같아.'며 드라마에서나 나올 듯한 포즈로 빙 돌아 등을 보이며 잘난 체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다. 그랬구나. 나를 잠에서 확 깨웠던 그것은 정말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어플이 '나는 지금 처자고 있다'고 올려 버리는 어플로 만들어 볼까? 세상에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것들이 넘쳐나니까 그중에 이정도로 아찔하고 괴로운 어플이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결국 이 아이디어를 어플로 세상에 내놓았다.

기승전홍보처럼 됐지만 나는 이 아이디어를 잘 키워볼 생각이다. 인간에게도 수많은 성격이 있듯이 알람도 수많은 성격의 알람이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런 스파르타식 알람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꼭 있을 테니까.라고 희망을 가지고 있다. 서머셋 모옴의 '그 어떤 면도기에도 철학이 있다.'는 어줍잖은 철학은 과분하다고 할지라도 이것으로 조금은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니까요.

특히나 2015년을 준비하는 이 마당에 
게으른 나에게도 이런 것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2014년 이제 안녕.


우리가 삶에 대한 투지를 끌어올리는 곳도, 인생의 희망을 키우는 곳도, 자신의 인내와 용기를 시험하는 곳도 모두 알람런에서 시작하길 가대하는 바이다.

by 히언 | 2014/12/31 00:11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김수범 at 2014/12/31 00:20
꽤나 흥미롭군요. 앱 이름을 알려주셔야죠.
Commented by 히언 at 2014/12/31 03:26
알람런이에요 ^^
Commented by 가스배 at 2014/12/31 03:23
그러게요. 무슨 앱이신지 말씀해주셔야 할듯. @.@
Commented by 히언 at 2014/12/31 03:39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handsome.alarmrun ㅎㅎㅎㅎ 친절하게도..
Commented by 주인아 at 2014/12/31 10:16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넌 끝장이야라고 읖조려 주는 알람이 있었음해요. 소름 돋아서 바로 일어날듯
Commented by 히언 at 2014/12/31 10:23
ㅎㅎㅎㅎ 그거 좋은 멘트네요!
Commented by 레이오트 at 2014/12/31 10:55
남자는 군대 기상나팔 벨소리 하나로 해결되는거 아니었던가요!!! 뭐 전 노는날을 제외하면 늦잠자는게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해서 이 정도 알람은 필요 없을 듯 ㅎ
Commented by 히언 at 2014/12/31 11:00
멋쟁이!
Commented by 윤오근 at 2014/12/31 17:02
누군가에게 알려지는게 겁나서 꼭 일어나게되요 ㅜ
Commented by 히언 at 2014/12/31 19:07
ㅋㅋㅋ 화이팅입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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